김현도 <결백 (The Upright)>

Critique 평론 2000. 5. 3. 08:42
결백 潔白
The upright

김현도



먼저 문외한처럼 이 그림이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해야 할까?
표면적으로 우리는 하얀 화면에서 푸른 빛깔의 묽게 희석된 색 띠를 보게 된다. 또한 그 色域(색역)을 가르는 미세하게 트인 틈새를 보게 된다. 그게 전부다. '이게 다예요?' 우린 그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그것은 일단 우리가 하나의 완성된 그림에 대해 기대하는 열렬한 화가의 노력을 철저히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데 이 작업이 한 화가가 30년에 가깝게 고수해 온 형식이라면 어떨까. 적어도 우리가 그 배반의 근원에 대해서 다소나마 궁금증을 표시해야 할 듯싶은 의무감이 우러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수직-또는 수평-의 엷은 붓 자국만으로 하나의 그림이 성립한다는 특정 현상이 가능해지기 위한 - 70년대 이후 - 우리 화단의 문예적 조건을 돌이켜 보는 일은 물론 면밀한 학구적 작업을 요한다. 하지만 거칠게 보더라도. 여기서는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자율성이 이식된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양상 속에 전통적 정신 영역으로의 회귀라는 동기가 부가된 매우 복합적이고 희귀한 형식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가령, 혼돈 속에 스스로의 행위를 던져 넣고 매체와 주체와 객체가 종잡을 길 없이 혼합되고 마는 식의 - 초기 추상작업으로부터 제3기 추상에 이르는 - 한국 현대회화의 대체적인 흐름을 통해서 볼 때도 매우 특이한 사례인 것이다. (평면 지상주의의 분위기 속에서도 그것은 하나의 독특한 경이로 비쳤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화폭에 이식된 모더니즘 회화의 한계를 엿본다는 표현은 합당치 않다. 마땅히 우리는 이곳에서 문명의 접촉을 특징짓는 극한치를 마주본다.

약간 비약해보자. 문화적 근본주의의 문제를 예술적 전통과 근성의 문제로 좁혀보자. 가령, 현대예술에서 적멸과 같은 개념의 문화 지형적 위치를 가정한다. (이 개념을 수용한 동서의 차이를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고려해 보자.) 예컨대, 케이지의 침묵과 소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이라든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라우센버그의 백색회화가 서쪽에서는 일종의 사회적 희롱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소지를 내포한다면, 아마 여기서는 적어도 그런 흐름이 도의적 진지함으로 수용된다는 점이 문예적 전통의 실질적으로 다른 측면이라고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비교적 그것을 질과 가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역시 이동엽의 회화에 나타난 '사이'에 관한 것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렇다. 우리는 이 좁은 틈새를 통해 우리가 전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신적 영역의 무한대를 재인식할 수 있다. '가령, 그건 무한대를 겨냥한 가늠자다. (어쩌면 그 최소한의 의미는 정신적 영역의 축소에 상응해서 점점 증폭되거나 고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시위로 보인다. 한번도 그의 작업은 그러한 지표로부터 벗어난 일이 없다. 다시 말해 그의 화폭은 한번도 즉물적인 평면이 아니었다. 그 점에서 그의 작업은 70년대 형식주의의 와중에서도 내용적으로는 당시의 유행에서 비껴서 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무한으로 통하는 극히 좁은 문을 가리키는 그림이다.

따라서 이동엽의 관점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백색과 허상에 관해 무언가를 그려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가장 극대의 표현형식을 발견해야 마땅하다. (또한 그건 무기질의 내용실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이러한 형식을 28년 동안이나 고수해온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상아탑에 귀속된 적도 없으며 줄곧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 왔다.) 어쩌면 그가 이 작업을 지속해온 것은 그 상징성이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추상작업은 줄곧 흐트러짐 없는 매무새를 강조함으로써 음성적인 사회비판의 형식이 된다. 다시 말해, 은연중에 상업주의와 아카데미즘에의 저항을 바탕에 깔고 있다.) 여하튼 그것은 이 작업의 표현력과 문화예술적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나름대로의 이념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것이 70년대 한국화단의 자율적 명예에 사로잡힌 다소 완고한 정신위생의 일종인가 아니면 회화의 본질적 문제가 녹아 있는 아직도 유효한 전위의식의 산물인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동엽의 일관된 작업은 예술적 환원주의의 근본에 가장 극한적인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그 검증의 핵심적 증거로 남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그의 지난 20여 년 동안의 회화작업의 성격을 특징짓는 사회적 불화는 한결 같이 결백한 화면으로 여전히 조율 중인 셈이다.


ref. 2000년 서울 박영덕화랑 이동엽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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